리연|좋아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2020. 6. 20.fic

- 나는 언제 좋아해요?

 

 

윤도운은 주먹으로 만수 슈퍼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허술하게 잠긴 철문은 요란하게 덜컹이는 소리를 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 좋으면 여는 만수 슈퍼는 섬에서 유일하게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였다. 김원필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자전거가 넘어가지 않게 핸들을 잡은 상태로 윤도운에게 말했다. 도운아. 그냥 가자. 맺힌 땀이 부스스한 김원필의 곱슬머리를 적셨다. 손으로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윤도운은 조금 심통이 얼굴을 했다. 안장에 올라탄 윤도운이 김원필에게 핸들을 넘겨받았다. 살짝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에서 비죽 튀어나온 입술이 보였다. 느리게 페달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얼굴을 스치는 미적지근한 바람이 땀을 식혔다. 매미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바람에 섞인 내가 머리카락을 퍼석하게 만들었다. 벌써 아주 오래 전부터 겪은 것들이었다.

 

그치만, 형이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김원필은 쿠션을 덧대 앉은 자전거의 짐받이를 손으로 붙잡다 웃음을 터뜨렸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손바닥으로 가볍게 윤도운의 등을 쳤다. 때리냐는 볼멘섞인 말에 장난기가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가서 얼음물이나 마시자. 그럼 윤도운은 말이 없었다. 빨갛게 물든 귀가 보였다. 뒷모습을 귀엽게 쳐다보던 김원필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에 펼쳐진 바다가 지독하게 넓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쩐지 막힌 기분이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얼음물이 잔에서 맺힌 물방울이 흘러 탁자 위에 고여갔다. 김원필의 양어깨를 붙잡은 윤도운은 무릎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김원필은 숨이 윤도운을 밀어냈다. 그의 다리 사이에 놓인 윤도운의 무릎이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신경이 쓰였다.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김원필의 방은 낡은 선풍기만 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 땀이 흘렀다.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얼음물로 겨우 달래놓은 열이 다시 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손을 내려 손바닥을 바닥에 윤도운이 조금 떨어져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을 들었다. 물이 넘어갈 때마다 목울대가 움직였다. 광경을 보고 있자니, 조금 다급해지는 기분이라 김윈필은 물잔을 치웠다. 다시 입을 맞춰 오는 김원필을 윤도운은 밀어내지 않았다. 거리가 한층 가까워져 맨살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떨어질 때는 소리가 났다. , 덥다. 길고 입맞춤을 끝낸 김원필이 윤도운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키스하다 더위 먹고 쓰러지면 진짜 웃기겠다."

 

"수건에 적셔 올까요?"

 

". 컵에 얼음도 갈아와."

 

"."

 

 

 

 

 

윤도운은 김원필의 말을 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윤도운이 컵을 집어 들었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김원필은 방에 대자로 누워 선풍기 버튼을 중으로 바꿨다. 여름, 섬의 낮은 질릴 만큼 고요했다. 노인네들은 일사병을 걱정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도 나무 그늘에 모여들었다. 나머지는 배를 타고 일을 나가 가끔 김원필은 윤도운과 둘이 섬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이야기를 하니, 윤도운 역시 저도 그렇다 말했다. 그래서 저는 여름이 제일 좋다는 역시 덧붙였다. 얼음이 담긴 컵에서 잘그락 소리가 났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윤도운이 물에 적신 수건을 김원필의 이마 위에 올렸다. 얼음물이 컵을 손에 쥐여줬다. 조금 더위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윤도운은 그의 곁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나눠 쐤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던 윤도운이 몸을 구겨 천천히 김원필의 옆에 누웠다. 김원필은 미지근해진 수건을 걷어냈다. 고개를 돌려 윤도운과 눈을 맞췄다. 동그란 눈동자가 감빡거렸다. 처음 그가 섬에 왔을 그는 고작 살짜리 꼬맹이였다. 섬에서 나고 자란 김원필과 달리 도시에서 살다 윤도운은 어른들에게 깍쟁이 소리를 듣는 그의 부모들과 달랐다. 행동이 굼떴다. 항상 김원필보다 차례 늦게 반응해 김원필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수였다. 그래도 윤도운은 김원필을 좋다고 따라다녔다. 김원필이 발을 걸어 넘어뜨려도, 고작 차이 나는데 죽어도 존댓말을 쓰라 해도, 아무 이유 없이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아도 김원필의 뒤에는 윤도운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

 

 

 

 

 

김원필은 손으로 윤도운의 뺨을 눌렀다. 볼살이 눌려 아까처럼 입술이 비죽 튀어나온 모양새가 됐다. 윤도운이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김원필이 마찬가지로 뒤를 따라오는 윤도운에게 물었다. 그때 김원필은 열일곱 살이었다. 윤도운은 지금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가로등이 없는 섬은 밤이 되면 길을 찾을 없을 만큼 깜깜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왔다. 김원필의 손에는 손전등이 하나 들려 있었다. 환한 빛을 내는 손전등. 달칵 소리가 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윤도운의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떨어졌다. 달칵. 김원필이 다시 손전등을 켰다. 슬리퍼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며 앞서가는 김원필의 등을 윤도운이 한달음에 달려가 끌어았다. 둘은 그날 손전등 하나를 들고 섬을 바퀴를 돌았다. 그때보다 손바닥 뺨이 윤도운의 팔이 김원필을 끌어안았다.

 

 

 

 

 

"너무 좋아요."

 

 

 

 

 

김원필은 조금 슬픈 기분이 됐다. 거짓말.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억울한 표정을 짓는 윤도운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어놓았다. 아래로 조금 쳐진 눈매가 웃음을 그렸다. 그럼 윤도운은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좋아하니까.

 

 

 

 

 

***

 

 

 

 

 

윤도운은 만수 슈퍼에서 기어코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만 귀찮게 하라는 만수 슈퍼의 김씨 할머니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름에는 자주 열어달라는 투정 아닌 투정은 덤이었다. 슈퍼를 나와 아이스크림을 허벅지에 내려쳐 봉지를 터뜨렸다. 꽁다리까지 뜯어낸 윤도운이 탱크 보이를 김원필의 입에 물렸다. 그날은 집으로 바로 가는 대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돌담 아래 앉아 바다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입에 차고, 날에는 똑같이 더워도 찝찝함이 덜했다. 김원필은 바다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빨로 아이스크림이 담긴 고무를 질겅질겅 씹었다. 윤도운은 말이 없었다. 딱딱한 아이스크림이 물렁거릴 때까지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김원필은 아주 오래전부터 떠나기를 원했다. 어쩌면 윤도운이 섬에 오기 전부터. 걸음마를 떼기도 전부터. 어디로 가고 싶냐 묻느냐면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운아."

 

"."

 

" 떠날 거야."

 

 

 

 

 

윤도운은 말이 없었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금기 섞인 바람, 안에서 풍기는 바다 내음, 작렬하는 태양과 조용하고 늙은, 때로는 돌아오지 않는, 가끔은 영원히 보내주지 않는 . 내가 싫어했던 것들. 단내가 풍기는 설탕물 사이에 씹히는 얼음 알갱이들을 씹었다.

 

 

 

 

 

"이번에도 따라올래?"

 

 

 

 

 

그리고 너를 만나 좋아하기 시작한 것들. 그래서, 네가 너무 미웠던 나를.

 

이해해줘

 

 

 

 

 

***

 

 

 

 

 

윤도운은 대답이 없었다. 항상 윤도운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쪽은 김원필이었는데, 반대 입장이 되니 윤도운의 기분을 조금 같았다. 침대에 누워 형광등에 꼬인 벌레들을 바라봤다. 하루살이 마리가 전등갓에 달라붙어 있었다. 구태여 죽이려 들지 않는 이유는 다음 아침에 그들이 죽어 있으리라는 알기 때문이었다. 김원필을 눈을 깜빡이다 아예 감아버렸다. 섬의 밤보다 김원필의 눈꺼풀 안쪽이 밝을 때가 많았다. 윤도운이 섬에 오기 , 그보다 어린 시절에는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어른들에게 살가웠고, 다정한 가족들 덕분에 구김살 없이 컸지만, 속이 틀어막힌 같은 날이 많았다. 김원필의 할머니는 김원필에게 밤바다를 조심하라 말했다. 왜냐고 물으면 주름이 자글한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밤바다는 낮과 달리 외로움을 타거든. 너무 외롭거든. 김원필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 방파제 위에 앉아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넘실거리는 밤바다를 내려다봤다. 작고 어린 김원필은 위태롭게 앉아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의 죽음이 너무 슬프기 때문도, 밤바다가 무섭기 때문도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탓이었다. 외로운 존재와 자신이 닮았는 사실을, 알아버린 탓에, 서러워 소리 울었다.

 

 

 

내가 좋아?

 

형은, 너무 다정해요.

 

 

 

그래서 좋다는 아닌데, 굳이 하나 뽑자면 ... 윤도운이 중얼거리는 뒷말은 김원필에게 들리지 않았다. 김원필은 윤도운에게 말을 들은 다시 밤바다를 마주한 듯했다. 윤도운이 사랑하는 김원필의 다정은 김원필이 사랑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다정은 외로움이었다. 타고난 외로움은 김원필을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손등으로 얼굴을 비볐다. 주름이 잘지는 얇은 피부는 금세 간지럼을 탔다. ​바다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의 태생적 외로움과 마주하지 않을 있는 곳으로, 자유로울 있는 곳으로. 김원필은 생각한다. 윤도운이 섬으로 오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옆에 있는 섬으로 갔다면, 아마 빨리 떠났을 것이라고.

 

 

 

작은 돌이 창문을 두드렸다. 김원필은 문틀을 잡아 옆으로 밀었다. 촘촘한 방충망 너머로 윤도운의 모습이 보였다. 모기에 물리는 싫어하는 주제에 김원필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해. 모양으로 물으니, 윤도운이 뛰어왔는지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작게 아래로 손짓하는 모양을 김원필이 1층으로 내려가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윤도운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낮에 대답 신경쓰여서 ..."

 

 

 

 

 

윤도운다운 이유였다. 손에 들린 손전등 불빛이 흔들거렸다. 반짝반짝. 김원필은 저보다 조금 윤도운을 올려다봤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비친 얼굴이 애틋했다.

 

 

 

 

 

" 따라가는 말고."

 

"."

 

"같이 가면 돼요? 옆에서 그냥 같이 갈래요."

 

 

 

 

 

되나 ... ? , 주제넘었나? 호기롭게 말해놓고, 눈치 보며 덧붙이는 말들이 김원필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몰래 나온 의미가 없을 정도로 크게 소리 웃었다. 윤도운은 머쓱한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김원필의 답을 기다리는 손이 끊임없이 꼼지락거렸다. 윤도운은 김원필의 다정함이 좋다고 말했지만, 정작 다정한 사람은 본인이었다. 김원필은 항상 윤도운을 기다리게 했는데, 윤도운은 고작 하루를 기다리게 하는 것조차 마음에 걸려 밤중에 김원필의 앞까지 왔다. 진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몰랐다. 김원필과 달랐다. 고개를 숙였다. 손등으로 눈가를 찍어눌렀다.

 

 

 

 

 

"그래, 가자."

 

 

 

 

 

같이 가자. 바다가 있든 없든. 육지든 섬이든. 지구든 우주든. 어디든 가자. 김원필이 대답을 피해온 이유는 비단 그가 섬을 떠나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밤바다 같은 내가, 너를 밑으로 끌어내리면 어쩌지? 그런 걱정에서 오는 일종의 슬픔 하나였다. 입안을 맴도는 수많은 말들을 마음 아래로 수장시켜온 세월 동안 김원필은 자주 슬펐다. 바다는 겨울에도 얼지 않아, 무뎌지는 날조차 없었다. 하지만 윤도운이라면 괜찮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도운이 옆에 있으면, 싫었던 섬이 조금은 애틋해진 것처럼.

 

 

 

 

 

***

 

 

 

 

 

윤도운과 김원필이 섬을 떠나는 , 만수 슈퍼 김씨 할머니는 사람에게 갖은 간식거리를 쥐어주었다. 이렇게 많이 쟁여두고 팔지도 않았냐는 말에 김씨 할머니가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 두들겼다. 늙은이의 마음을 너희가 어찌 알겠냐는 말에 마음이 찡해져 윤도운과 김원필은 할머니를 번씩 안아드렸다. 섬을 떠나는 위에서 둘은 옆에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밤바다에 대한 이야기, 처음 섬에 김원필을 윤도운의 이야기, 섬에 대한 이야기, 다다를 육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김원필이 말했다.

 

 

 

도운아 네가, 나에게 물어봤던 날이 있었잖아. 백날을 쫓아다녀도 내가 아무런 답도 주지 않으니,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네가 펄쩍 뛰며 나한테 그랬어. 언제 좋아해요? 그때 내가 꼭대기 박씨 아저씨네 밍키를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모습을 네가 나한테 달려와서 그러는 거야. 너는 언제 좋아하냐고, 밍키도 좋아하고, 우리 송아지도 좋아하고, 좋아하면서 너는 언제 좋아하냐고. 그러는데 나는 너무 웃겼다? (그게 뭐가 웃겨요. 나는 진짜 ... ) 들어봐. 얼마나 웃겼는데. 내가 웃으면서 도망갔잖아. 대답 해주고 너는 같은 목소리로 혀어엉 하면서 쫓아오고. 그런데 도운아. 있잖아. 나는 그랬다? 나는 그랬어.

 

 

 

하루도 너를 좋아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너를 처음 만난 그날부터.

 

myoskin